2022.11.29
(EBS에서 방영한 철학자 강신주의 강연 영상을 보고 적은 서평입니다.)
글을 쓰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다. 논문을 쓸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학창시절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마음껏 놀기도 하고고 좌절도 해보고 아무 때나 잠들고 깨어나서
그렇게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달콤한 시절이
우리의 곁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시간이 흘러 난 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고
불혹이 지나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렇게 만난 귀여운 감시자는 어느새 '껌딱지'가 되어있었다.
예전에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떤 원인이 분명 있었으리라.
어쨌든 현재 이 귀여운 감시자는 시종일관 나와 아내의 동선 상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그 마음을 생각하자니 그 안에는 하루치의 좌절 또는 절망이, 고됨이나 시련을
전혀 생각치 않은 그저 단순하고 명확한 한 사람의 순정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주면 무언가를 기어코 받아내고,
무언가를 받았을 때야 비로소 무언가를 주려는
기브 앤 테이크의 자본주의적 계산법에 전혀 휘둘림 없을..
그저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 커다란 존재인 누군가가 사라질까 봐,
그 존재의 유한함을 지속해서 지키고 살피겠다는 아이의 그것..
그것이야말로 결국 사랑이겠지 싶어서 어른이 된 이후의 내 사랑은 자본주의였고 포장이었고
얕은 수작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지우지 못하는 내면의 어떤 감정들이 무력하고 의미 없이 느껴져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요즘 티핑포인트니 기후에 대한 이슈가 많은데, 이를 육아에 대입해 본다면
과잉 보호, 지나친 관심과 애정.. 이런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다.
반면 추위 또는 더위는 실패, 고난, 좌절 이란 단어로 치환 할 수 있다.
아이를 너무 따뜻하게 온실 속의 화초 처럼 키우면, 비바람이 부는 환경 역경 또는 실패, 고난에
쓰러지고 만다. 과잉보호를 하면 실패에 쉽게 좌절한다. 지나친 관심과 애정은 아이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늘 과하면 안 된다. 적당함이 필요하다. 아이를 너무 사랑한다고
너무 따뜻하게 품고만 있는다면 아이는 부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너무 과한 관심을 쏟는 다면 그것은 집착, 욕심 등으로 변질되고
나중엔 내가 부담스럽다며 대화를 피할 수도 있다.
강신주는 이렇게 말했다.
"자녀가 배고플 때, 따뜻한 밥 한 끼만 해주면 된다. 배부른 자녀에게 2공기, 3공기 먹이면 안 된다."
아.. 자녀는 딱 한공기만 먹으면 충분하다.
내가 아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2 공기, 3공기 먹이고 싶어서 더 밥을 준다면 그 밥은 어느 순간 고통으로 수렴한다.
나는 아직 옹알이만 하는 이 귀여운 감시자에게 자주하는 말이 있다.
"아빠는 우리 쑥쑥이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늘 응원할께."
자연스러움.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도 예측 못하는 자연의 환경 속에서 하나의 열매는
적당한 때에 그때그때 때에 맞게 자라야 시련이 와도 견딜 수 있다.
그 열매를 너무 아끼고 사랑해서 어서 빨리 자라라고 과하게 품어주면, 그 열매는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나 빨리 자라고 결국 추위에 견디지 못하게 된다. 아이를 키울 때에도 과한 관심이 아닌,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게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며, 아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주고, 과한 관심과 사랑보다는
적당한 관심과 사랑, 뒤에서 묵묵히 믿음으로 응원한다면, 아이는 그때그때 맞게 자연스러운
성장을 할 것이다.
그결과 시간이 지나 내가 없더라도 바르고 멋진 어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렇게 내 한 공기의 사랑, 다짐을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