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달은 독서 방법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세계 최초의 책은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방 사람들이 흙을 오늘날의 종이와 비슷한 형태로 빚어 기록한 뒤 불에 구운 것을 필두로 중국에서는 비단에 글을 쓰고, 서양은 너도밤나무(boc)를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종이가 발명되어 종이책이 주류를 이루었고, 기술의 발전은 디지털 출판물 시대까지 흘러왔습니다.
책을 발간하는 형식은 흙에서 비단 그리고 종이를 거쳐 e-book까지 다양한 형태로 바뀌었지만 '읽다'라는 행위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독서가 '읽다'에서 '듣다'로 행위 영역이 확대되었습니다.
이번 북리뷰 대상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은 오디오북으로 들은 책입니다.
북리뷰 글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디오북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이 소설을 종이 책으로 읽었다면 오디오북으로 들은 만큼의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아서입니다.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하는 아날로그 인간이지만, 소설 장르에서만큼은 오디오북의 진가를 확인하였는데 바로 성우들의 연기력과 음향효과 때문입니다.
내용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음향효과와 성우들의 연기는 귀를 자극하여 상상력을 더욱 확대시키고, 종이책과 달리 다음 내용이 아무리 궁금해도 성우들이 읽어주기 전까지 궁금증을 꾸욱 누르고 긴장한 상태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그럼 오디오북 감상은 잠시 접어두고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최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은 사후세계, 종교, 신화에 기반하여 상상을 펼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예를 들어 그의 다른 소설 '파피용'이 ‘아담과 이브’를 오마주 하였다면 '기억'은 ‘노아의 방주’를 오마주 하였습니다.
물론 2개의 소설은 내용이 완전히 다릅니다. 미래의 우주로 나아가는 '파피용'에 반해 '기억'은 과거의 역사로 돌아갑니다.
첫 작품인 ‘개미’에 매료되어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후 타나토노트, 죽음 등에 나타나듯 사후세계 또는 영적 영역의 작품이 많아져 초창기 받았던 기발함에서 오는 감동은 옅어졌습니다.(하지만 여전히 그의 상상력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기억’은 전생이라는 영적 영역과 다양한 신화를 기반으로 상상을 펼치고 있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관심 영역이 하나의 작품에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 르네가 퇴행 최면으로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있는 전생을 경험하며 시작합니다.
여러 전생을 경험하던 르네는 수많은 전생 중 첫 번째 삶을 살았던 게브와 만나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중심 사상은 운명론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수많은 SF영화와 소설을 통해) 나비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퇴행 최면으로 과거의 자신인 게브에게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려주고 멸망한 고대 아틀란티스 민족을 살려낸 뒤 그를 고대 이집트 신으로 만들지만 운명론은 현재를 살고 있는 르네가 과거 게브의 삶을 바꾸어도 이미 그것까지 운명이라는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그러한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었고 르네는 퇴행 최면을 경험하기 이전부터 자신이 영향을 줬던 역사가 반영된 시대를 살고 있었던 거죠. 마치 르네가 과거로 돌아가 역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정해진 운영이었다는 듯이.
타임 루프를 다루는 영화 ‘하루’를 보면 주인공 준영은 딸의 죽음을 막으려 하지만 사고는 매일매일 반복될 뿐입니다. 주인공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블랙홀’, ‘하루’와 같이 운명론을 다루는 타임 루프 영화에서 보듯 루프 되는 시간은 비교적 짧은 시간입니다.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의 행동이 영향을 주는 범위가 제한적이도록 되돌아가는 시간을 짧게 잡습니다. 긴 시간에 걸쳐 역사를 바꾸는 행동이 이미 미래에 반영되어 있다는 운명론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현재의 르네가 알고 있는 역사가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 영향을 준 결과물이라는 부분은 선뜻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뻔한 상상을 하지 않는 작가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소설에 차용된 역사를 살펴보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준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며 승자에 의해 다른 역사 기록된 역사책과 판타지를 접목한 소설의 차이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기억’에는 아틀란티스, 성경,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부터 유럽의 역사, 시간 여행과 평행우주론에 기반한 다차원 세상 그리고 운명론과 결정론까지 다양한 이야기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을 종이책으로 접하게 되면 문장 한 줄 한 줄 분석하며 자칫 판타지 소설을 현실의 잣대로 판단하게 되는데, 귀로 가볍게 듣는 오디오북으로 접하니 줄거리에만 집중되어 소설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퇴근 시간, 청소와 같이 집안일을 하며 귀는 자유로운 시간에 오디오북으로 독서를 하는 건 어떨까요?
독서의 또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오디오북을 많은 분들이 접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미 오디오북으로 독서를 ____ 운명이 정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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